버질 아블로 VIRGIL ABLOH 소개
칸예 웨스트부터 나이키, 루이비통에 이르기까지
버질 아블로는 지난 2021년 11월 28일 4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미국에서 태어나 화려한 인생을 살았던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패션계에는 그의 이름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버질 아블로는 그만큼 전 세계 패션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던 인물이다. 오늘은 그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 칸예 웨스트와의 만남, 그리고 시작 "
버질 아블로는 건축학을 공부했다. 칸예 웨스트와 만나 함께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 " 펜디 FENDI " 에 인턴으로 입사하기 전까지 그는 전문적인 패션 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다.
2009년 칸예와 함께 펜디에 인턴으로 입사한 그는 지속적으로 칸예와 교류를 이어갔다.
2009년 당시 칸예는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티스트이자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당시 칸예 웨스트의 소개로 버질 아블로는 시카고 불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 중인 " Chicago Don C "를 알게 됐고 버질 아블로의 감각을 알아본 돈 씨는 준비 중이던 편집숍 " RSVP Gallery " 의 매장 인테리어를 버질에게 부탁한다.
버질 아블로의 시선과 감각이 담긴 RSVP Gallery 매장은 남다른 인테리어 디자인을 자랑했고 이에 감명받은 칸예 웨스트는 버질에게 " 돈다 DONDA "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맡아줄 것을 요청한다.
그렇게 버질 아블로는 칸예 웨스트와 함께 주류에서 활동하여 앨범 커버 아트 작업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 버질 아블로의 첫번째 브랜드 " 파이렉스비전 " 탄생 "
성장을 거듭하던 버질 아블로는 2012년 그의 첫 번째 브랜드 " 파이렉스 비전 PYREX "를 설립한다.
파이렉스 비전은 상업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저 버질 아블로의 실험과 예술적인 도전을 목표로 한 브랜드였다. 그는 미국을 대표하는 아메리칸 캐주얼 브랜드 " 폴로 랄프 로렌 " 의 데드스탁 재고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해서 파이렉스 비전 브랜드를 상징하는 " PYREX " 문구를 스크린 프린팅해 재판매했다.
단돈 40달러에 구매해온 랄프 로렌 데드스탁 재고에 PYREX 브랜드 문구를 프린팅 한 제품은 550달러 이상에 판매됐다.
여기서 버질 아블로의 가치관과 성향을 파악해 볼 수 있다. 버질 아블로의 디자인 원칙은 " 원본 디자인에 일부 변주를 줘서 새로운 디자인을 창조한다. " 로 요약할 수 있다.
버질 아블로는 자신의 디자인 철학과 원칙을 끝까지 유지했다.
단순하지만 특별했던 버질 아블로의 첫번째 브랜드 " 파이렉스 비전 " 은 그의 결정에 의해 단 1년만 운영되고 사라졌다.
" 오프 화이트 OFF-WHITE TM " 의 탄생
" 오프 화이트 " 역사의 시작
오프 화이트는 버질 아블로를 상징하는 패션 브랜드다. 버질 아블로가 세상을 떠났지만 오프 화이트는 여전히 건재하며 계속해서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버질 아블로의 디자인 철학과 가치관을 잊지 않고 계속해서 유지하고 이어가려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오프 화이트는 2013년 버질 아블로에 의해 창립됐다. 버질 아블로가 파이렉스 비전을 폐쇄하고 두 번째로 시작한 패션 브랜드이자 사업이었다.
오프 화이트는 파이렉스 비전과는 결이 달랐다. 제대로 준비했고, 제대로 컬렉션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오프 화이트를 대표하는 브랜드 로고와 핵심적인 디자인은 모두 당시 버질 아블로에 의해 탄생됐다. 패션의 중심지인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시작된 오프화이트는 빠르게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프랑스 파리와 중국, 일본과 미국까지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오프 화이트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배경에는 많은 도움이 있었다. 물론 버질 아블로의 뛰어난 디자인 능력과 감각, 오프 화이트 특유의 독특하고 개성 있는 디자인이 가장 큰 몫을 했지만 " 뉴 가드 그룹 " 의 백업과 칸예 웨스트의 샤라웃 등 오프 화이트가 세상에 알려질 수 있도록 힘쓴 기업과 영향력 있는 인물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 그리고 성장 "
브랜드를 시작한지 1년이 지난 2014년 버질 아블로는 오프 화이트 브랜드의 첫 여성 컬렉션 라인을 론칭했다. 당시 파리 패션 위크를 통해 공개됐던 그의 첫 여성 컬렉션은 패션계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갔고 단숨에 LVMH 상 최종 후보까지 선정될 수 있었다. ( 최종 수상은 못했다. 당시 후보에는 " 자크뮈스 Jacquemus " 도 있었다. )
오프 화이트는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 컬렉션을 활발히 출시하는 브랜드다. 가장 유명한 협업 컬렉션으로는 " 스웨덴의 가구회사 이케아 IKEA " 와의 협업 컬렉션 " 마르케라드 MARKERAD " , 그리고 나이키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 더 텐 THE 10 " 컬렉션이 있다.
버질 아블로의 오프 화이트와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 " 나이키 NIKE " 의 만남은 역사에 남을 최고의 만남으로 여전히 회자된다. 두 브랜드의 만남으로 탄생한 협업 스니커즈 컬렉션, " 더 텐 컬렉션 " 은 버질 아블로를 더욱 성장시키고 세상에 알리는데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두 브랜드의 협업 컬렉션은 2017년 세상에 공개됐다.
나이키 브랜드의 클래식한 스니커즈 모델들을 기반으로 그가 추구했던 디자인 원칙이 반영된 새로운 협업 스니커즈 모델들은 엄청난 찬사를 받았고 역사에 남을 스니커즈 디자인으로 기록될 수 있었다. 그가 디자인에 참여한 나이키 스니커즈들은 여전히 엄청난 가치를 가지며 높은 리셀 가격에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버질 아블로, 그리고 루이비통
" 루이비통의 선견지명 "
버질 아블로는 스스로 본인의 디자인 능력과 상업적 사업 능력을 입증해 나갔고, 오래전부터 그의 활동을 눈여겨보던 당시 루이뷔통의 CEO인 마이클 버크는 2018년 3월 25일, 그를 루이비통의 남성복 레디 투 웨어 라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한다.
당시 버질 아블로의 루이비통 입사는 엄청난 이슈였다. 루이비통과 같은 역사깊은 패션 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흑인이 임명되는 경우는 흔치 않았고 버질 아블로는 심지어 전문적인 패션 교육을 이수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혈통에 패션교육을 받지 못했던 버질 아블로의 루이비통 입사는 당시 엄청난 비난과 조롱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버질 아블로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한 루이비통의 선택이 현명했다는 것이 입증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18년 남성복 패션 위크에서 처음 선보여진 버질 아블로의 루이비통 컬렉션은 단숨에 그를 모두가 인정하는 디자이너로 만들었다.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런웨이 쇼를 선보였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루이비통 제품들을 선보이며 찬사를 받았다. 당시 루이비통 런웨이에 플레이보이 카티와 ASAP 나스트, 키드 쿠디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컬렉션 아이템을 착용하고 무대에 올랐다. 전문 모델이 아닌 유명 아티스트들의 런웨이 참여는 엄청난 홍보 효과와 함께 이슈화됐고 단숨에 루이비통은 힙한 이미지와 스트릿 패션 무드가 입혀진 럭셔리 브랜드가 될 수 있었다.
2019년에는 LVMH 그룹의 매출이 무려 20% 성장했는데 이때의 매출 성장은 버질 아블로의 덕이 컸다.
버질 아블로가 생전 걸어온 길은 다시 돌아봐도 믿기 어려울만큼 대단하다. 두 번의 브랜드 론칭부터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 루이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의 활동, 여러 번의 협업 컬렉션 론칭과 역사적인 나이키와의 협업 컬렉션까지.
그는 패션은 물론이고 음악과 예술 등 모든 문화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를 둘러싼 많은 논란과 논쟁이 있었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지금 여전히 그의 이름을 건 컬렉션이 론칭되고 있으며 그를 기리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루이비통은 아직 컬렉션을 담당해 줄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찾지 못했다.